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창수·유남호 코치 잠적사건 (문단 편집) == 여파 == 이 사건으로 결국 4월 29일, 해태 구단은 김동엽 감독을 총감독으로 물러나게 하고 조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말이 총감독이지 사실상 김동엽 감독을 해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월 30일 김동엽은 사직서를 내고 해태 타이거즈를 떠났으며 이후 [[MBC 청룡]]으로 이적하여 1987년까지 감독으로 활동했다. 이때 김동엽이 남긴 말은 "내가 가장 아낀 코치[* 특히 조창수 코치에 관해서는 사실이었다. 6개 구단의 감독이 모두 정해지고 코칭스태프를 짜던 단계에서 당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감독이던 조창수는 삼성의 [[서영무]] 감독과 해태 김동엽 감독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서영무는 조창수의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재학 시절 은사였지만 자신이 지도자로서 입지를 세운 [[광주광역시|광주]]를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김동엽의 영입 제의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국 조창수는 김동엽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해태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렇게 공들여 데려온 코치를 그 따위로 대접한 것은 일반 야구팬들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일 것이다.]인데 '[[사보타주]]'를 하다니 정말 섭섭하다. 사전에 내게 잘못을 지적해 주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후 김동엽은 자신의 자서전 '''그래 잘라라 잘라''' 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조창수 코치의 이름을 '''조 모'''로 익명처리 하며 순전히 조창수, 유남호 코치의 잘못이었던 양 얘기를 풀어 놓았다.[* 생전에 조 코치가 감독직을 노리고, 자신의 비위 사실을 구단 측에 과장하여 제보했다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는 조창수가 잠시 해태 감독대행으로 있다가 [[김응용]] 감독이 영입된 후 해임당했다고 기술했지만, 사실 조창수 코치는 1983년 시즌 '''대행 자리에서 내려와''' 김응용 휘하에서 1984년까지 계속 해태 코치로 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